2014년 상반기 한국 순회 강연 (1) 나주 천년의 숨결, 원코리아를 만나다
나주 천년의 숨결, 원코리아를 만나다
지난 3주간 한국 방문을 기획하면서 풀뿌리 통일운동을 불지피기 위한 지역순회 여행을 계획했다. 6월 5일부터 13일까지 나주, 광주, 거창, 고창, 대구, 부산, 세종시, 수원, 서울에서 모임이나 강연을 가졌다. AOK (Action for One Korea)가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글로벌 시민운동으로 커나가기 위한 첫 걸음을 뗀 것이다.
첫 걸음을 천년 숨결이 숨쉬는 나주에서 시작하게 된 것이 무척 설레이고 기쁘다. 천년도시라 불리는 나주는 983년 고려 때 나주목으로 지정되면서 전라남도의 대표 도읍이 되었고, 오랜 기간 ‘작은 한양’으로 불리워온 곳이다. 고려 개국 때에도 왕건은 나주를 얻고 호족세력을 규합하여 나라를 창건할 수 있었다.
나주지역 모임을 담당한 지역활동가이자 AOK 회원인 홍양현씨가 숙소로 잡은 곳은 나주목사(지금의 도지사)의 살림집이었던 ‘목사내아’. 심상치 않은 역사를 가진 이 곳에서 통일시대로 가는 긴 여정의 첫 발을 내딛었다.
나주사람들 글로벌 시민운동과 만나다
나주는 역사의 도시인만큼 강연 장소부터 특별했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나주 향교. 이 향교의 대성전은 임진전쟁시 불타버린 성균관을 후에 재건축할 때 모델로 삼은 곳이라 하니, 말하자면 향교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 현존하는 향교 중에 큰 규모를 자랑하는 나주향교. 조선시대 지어진 건물이 말끔히 정돈되어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나주향교. 지역주민들의 교육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 – 정연진] |
▲ 통일에 관한, 한국사회에서는 편치 않을 수도 있는 주제의 강연을 듣기 위해 한 분 두 분 향교로 모이고 있다. 가운데 전숙 시인, 오른쪽 김승환 나주문인협회 사무국장. [사진 – 정연진] |
▲ 서당처럼 1인용 탁자를 하나씩 끼고 대청마루에 앉은 나주 사람들. 나도 서당 선생이 된 기분이다. 서있는 사람이 나주 강연을 주관한 홍양현씨. [사진 – 정연진] |
향교 마당에는 수령 6백년이 넘은 우람한 은행나무 한 쌍이 서있고 바람이 숭숭 잘 통하는 넓다란 대청마루는 시민들의 교육 공간으로 쓰인다. 처음 만나는 분들이지만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나주 사람들. 그들에게 천년 역사의 숨결이 숨쉬고 있기 때문일까.
▲ 나주 강연 모임을 주관한 나주 지역활동가 홍양현씨와 함께. 페이스북에서 서로 소통해온 터에 처음 만났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다. 항상 웃는 얼굴에서 긍정적 삶의 자세가 물씬 베어나온다. [자료사진 – 정연진] |
▲ 수령이 6백여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 나주 향교. 우람한 나무 무성한 나무 잎들이 경이롭다. [사진 – 홍양현] |
AOK 운동의 취지를 설명할 때 많은 분들이 호응해 주시니 벌써 한 마음이 된 느낌이다. “AOK의 A는 액션을 뜻합니다. 말보다 실행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굳이 영어를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감독이 ‘레디? 액-션!’하면 배우가 연기를 시작하듯이, 보통 시민들이 통일이라는 드라마에 배우가 되어 참여하자, 우리들 손으로 통일시대를 만들어가는 주역이 되자”라는 뜻입니다.
▲ AOK 통일손수건을 설명하고 있는 필자. [사진 – 홍양현] |
나는 생활속 통일운동을 실천하는 매개체인 AOK 통일 손수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이 통일 손수건을 보세요. 하얀 색의 한반도는 남과 북이 하얗게 마음을 비우고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평화’라는 글자가 세계 각국어로 한반도를 빼곡히 채우고 있습니다. 이건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인을 끌어들여 지구촌이 통일 코리아의 탄생을 지지하고 성원하게 하자는 뜻입니다.”
“평화 글자가 보라색인 까닭은 파랑으로 표시되는 남, 빨강으로 표시되는 북의 장점을 조화롭게 혼합한 색이 바로 보라색이기 때문입니다. 보라색을 내려면 남과 북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해외동포들이 역할을 해야 합니다. 비교적 남과 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해외동포들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통일손수건 설명에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여 주신다.
“우리가 마음을 합심해 세계가 공감하는 통일비전을 내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머지않아 세계인의 축복 속에 하나의 코리아가 탄생할 것입니다”라는 말에 참석자들은 적극 호응을 보이신다.
통일시대를 위한 나주 천년의 지혜
말을 타고 달려온 장군이 우물가 처녀에게 물을 달라고 하자, 처녀는 조심스럽게 물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준다. 급하게 달려온 장군이 물을 마시다 체할까봐 버들 잎을 띄웠다는 지혜로운 처녀, 나주 오씨와 태조 왕건이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려 건국에 관한 설화이다. 후에 장화왕후가 된 나주 오씨는 고려 2대 임금이 되는 혜종을 낳았고, 왕건은 나주에 15년간 체류하면서 힘을 길러 호족세력을 연합하고 마침내 새로운 나라 고려를 창건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 태조 왕건과 후에 장화왕후가 된 나주 오씨 처녀의 사랑이야기를 보여주는 나주 완사천의 조형물. [사진 – 나주박물관 자료] |
현재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난국은 지난 백 년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고려 개국의 지혜를 배워야 할 때이다. 통일신라 말기, 신라의 힘이 쇠하자 후백제, 후고구려가 일어섰다. 신라까지 다시 세 개의 나라로 분열된 극도의 혼란과 위기의 시기에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펴서 하나의 통일나라를 이룩해낸 지도자 왕건.
고려 개국 세력과 같이 세 개로 쪼개진 나라를 하나로 통합시킨 조상들이 있는데, 우리는 두 개의 나라도 온전히 통합해내지 못한다면 후손들에게 과연 어떤 평가를 들을 것인가. 삼국 통일에서 ‘통일이라는 과업에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인해 1,400여년 간 줄곧 후손들에게 욕을 먹는 신라인들을 기억하자. 우리는 후손들에게 그들보다도 못한 존재로 기억되지 않겠는가.
천년 고도 나주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시대 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나주의 역사에서 분단시대 분열의 난국에 마침표를 찍고 통합의 시대를 열어갈 열쇠를 찾아야 할 것이다.
▲ 도시 곳곳에 보이는 흙과 돌로 쌓은 나즈막한 흙돌담. 홍양현씨는 나주시의 무분별한 소방도로 추진계획에 맞서 옛마을 지키기, 흙돌담 지키기 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사진 – 정연진] |
▲ 나주 천연염색박물관에 걸려있는 전시물. 천연염료로 염색한 모시의 색상이 참 곱다. [사진 – 정연진] |
생활 통일운동이 뿌리내리는 나주를 꿈꾸며
내가 꿈꾸는 통일운동은 하루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이 통일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을 찾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미래지향적 실천운동이다. 통일 방법론보다는 통일 비전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통일나라는 어떠한 나라여야 할까’ 하는 고민과 함께 ‘통일된 나라에 살아갈 사람들은 무엇을 먹어야할까, 무엇을 입어야할까, 어떤 집에 살아야할까.’ 이렇게 일반 사람들이 실생활과 연관해 생각할 수 있는 통일나라에 대한 꿈과 상상을 펼치고 이를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실현해 나가고자 하는 운동, 그러한 방식이 생명력있는 시민운동을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숙소였던 목사내아. 나주목사의 살림집을 한옥체험 숙소로 탈바꿈 시킨 곳이다. 시원한 대청마루와 오밀조밀한 방이 나주의 역사를 생각하게 만든다. [사진 – 정연진] |
의식주를 기반으로 한 생활형 통일운동을 모색하는데 나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고장이라 할 수 있다. 의생활 면에서는, 천연 염색이 고대 삼국시대부터 발달해 쪽 염색 등 천연염색기업이 국내 유일의 무형문화재로 보존되었고, 국내 최대의 천연염색 공장도 나주에 있다고 한다. 먹거리로 말하자면, 나주 쌀, 나주 배, 나주 홍어 나주 곰탕 등 영산강과 기름진 평야를 배경으로 식재료가 풍부하고 발효식품이 발달해있다.
거주문화로 말하자면, 수 백년 내려오는 건물이나 나즈막한 흙돌담까지 잘 보존되어 있고 한옥의 장점을 현대에 접목하고 있다.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지구촌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는 생활형 콘텐츠를 개발한다면 지구촌이 통일 코리아를 지지하고 성원해 줄 것이다. 그러한 잠재력을 풍부히 가진 곳이 나주이다.
▲ 강연을 주관한 나주학교 홍양현씨 어머님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주신 푸짐한 아침 밥상. 구수하고 부드러운 청국장, 나긋나긋한 조기구이, 맛깔난 멸치 볶음과 고추 조림, 자작하게 졸인 김치찌게에다 처음 맛보는 나주 곰탕까지.. 이렇게 맛나고 푸짐한 아침 밥상은 난생 처음이다. [사진 – 정연진] |
역사의 숨결, 전통 문화가 살아 숨쉬고 푸근한 인심이 넉넉한 곳. 조급해 하지 않고 발효음식을 숙성시키듯 은근과 끈기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 나주시인 전숙 선생의 <어머님의 기도>에 나오는 시어처럼, ‘끊임없이 솟아 흐르는 은하수 사랑’를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강연 후 소감을 적은 어느 참가자의 소감처럼, ‘기를 합하고, 마음을 화합하면 평화가 온다’. 그것이 곧 통일운동 아닐까.
▲ 강연 후 한 사람씩 소감을 적었다. 소감을 적은 이는 ‘일상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는 통일운동’ 방식이 마음에 와 닿으셨나보다. 동아시아 고전을 연구하시는 임재택 선생님의 글. [사진 – 정연진] |
▲ 강연이 끝나고 뒤풀이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OK 원코리아 손 싸인을 펼쳐보이고 있는 참석자들, 2014년 6월 5일. [사진 – 홍양현] |
▲ 나주 천연염색박물관에서 원코리아 손 싸인을 보이며 환한 웃음을 짓는 아름다운 나주 사람들. 나주에서 다음 강연지인 거창 가는 길에 나주 분들이 동행해 주셨다. [자료사진 – 정연진] |
천년도시 나주여, 이제 통일시대를 꿈꾸자. 역사에 면면히 내려온 천 년의 지혜와 옹골찬 슬기를 우리 안에 되살려 손잡고 함께 살아갈 통일나라의 미래로 뚜벅 뚜벅 걸어나가자.
아름다운 나주 사람들. 그들과 함께 아름다운 통일 나라의 꿈을 꿀 것이다. 그들이 앞으로 AOK운동과 함께 엮어갈 통일나라의 꿈과 비전이 기대된다. 그 꿈을 엮어가기 위해 올 가을 나는 이곳을 다시 찾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