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게 띄우는 편지> ‘대박’의 환상에서 깨어나십시오
<박근혜 대통령에게 띄우는 편지> ‘대박’의 환상에서 깨어나십시오
2014년 1월 국내외 AOK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인터넷 공개서한을 띄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띄우는 편지> ‘대박’의 환상에서 깨어나십시오<연재> 정연진의 ‘원코리아운동’ 이야기 (32)
박근혜 대통령께.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통일분야 정책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한 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대통령의 표현이 나라 안팎에서 큰 반향을 낳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한 평생 부르다 부르다 지쳐버린 국내외 동포들은 이번 기자회견을 설레는 마음으로 또는 착잡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21세기 한국은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있습니다.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역동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지만, 한국 사회는 그 동안 누적된 수 많은 사회 갈등이 표면으로 분출하여, 지역간, 세대간, 계층간의 대립이 곪아가고 있습니다. 더우기 삶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극단으로 내몰려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의 통일정책이 국내 문제는 물론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명쾌한 방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해외에서나 국내에서나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먼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래 처음으로 남과 북이 힘을 합치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국민들에게 알려주어서 반갑습니다.
그러나 ‘통일은 대박’이라는 표현을 미국인들에게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대박’은 영어로 직역하자면 ‘jackpot‘인데 미국인들에게 잭팟이라는 말은 도박용어로 쓰입니다. 통일을 마치 카지노 게임처럼 인식하게 만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었습니다.
남북이 함께할 수 있는 미래를 꿈꿀 수 있으려면, 서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말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말은 상대를 움직이는 힘이자, 닫혔던 마음을 열어 어루만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도구입니다. 어떠한 용어를 쓰느냐에 따라 상대에게 믿음과 협력을 끌어낼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일파만파 퍼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사진: 정연진] |
남북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소통의 상대방인 북측이 이해할 수 있고 소통될 수 있는 말을 쓰는 것이 기본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뢰 프로세스’라는 말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신뢰’란 누구를 위한 신뢰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진정 남북 간의 신뢰인지, 혹은 한-미-일 동맹에 의해 북한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주변국가로부터 받는 신뢰인지 당사자인 북은 어떻게 느낄까요. ‘프로세스’라는 말도 대부분 국민들이 얼른 알아듣기 힘든 외국어인데, 하물며 북녁동포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말이라 보십니까.
통일된 나라에서 살아갈 사람들은 소수의 특권층 만이아니라 절대 다수인 보통사람들 2천4백만 북한 동포와 5천만 남한 동포입니다. 해외동포 포함 8천만 겨레가 함께 꿈꿀 수 있는 공동의 미래를 이야기하려면, 이 땅의 주인인 민에 대한 신의와 존경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어야 합니다.
이 땅의 풀뿌리 백성은 지난 20세기 참으로 힘든 고난의 세월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서구열강의 침략시대, 일제식민지로 전락하고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한 분단의 고통과 함께 헤아릴 수 없는 눈물과 한을 삼켜야 한 세월이었습니다.
1894년의 갑오년, 학정과 수탈에 견디지 못한 조선의 농민들은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자신들이 ‘주인’이라 선포했고, 民이 주인이라는 깨어있는 의식은 이 땅의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누누히 실현되었습니다. 또 다시 갑오년인 2014년. 우리는 120년전 그 시기와는 확연히 다르게, 이제는 덩치 큰 나라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갈 통일 나라를 꿈꿉니다.
이 한 장의 그림을 눈여겨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일제 강점기 무려 650만명이 넘는 백성들이 일제의 무자비한 강제동원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처절하게 능욕 당한, 일본군성노예(위안부) 할머니들. 천신만고의 위험을 뚫고 돌아와서도 인간답게 살 수 없었던, 실로 우리 역사의 최대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위안부’할머니도 꿈꾸던 남과 북이 하나되는 모습입니다. 한 평생 한으로 고통받던 분들도 꿈꾸던 통일인데, 우리 세대에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후손들에게 정말 너무나도 미안하고 부끄럽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 ‘만남’ 2004년에 한많은 세월과 작별한 고 김순덕 할머니가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사진제공: 나눔의 집] |
대통령께 부탁드립니다. ‘대박’이라는 단기적 환상을 부추키지 마시고, 식민지와 분단의 오욕으로 얼룩진 20세기 과거사를 멋지게 한 판 뒤엎을 만한 ‘새로운 100년’의 비전을 국민들과 함께 꿀 수 있기 바랍니다. ‘통일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는 긍정과 희망이 우선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국민들에게 먼저 통일에 대한 꿈과 희망을 불어넣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진정한 소통을 통해 국민들 마음 속에 깊숙이 숨어있는 분단이라는 마음의 병부터 치유해야 합니다. 매사에 극단적인 대립과 반목, 투쟁 속에 타협과 화해를 찾지 못하는 한국사회…. 이것은 바로 분단이라는 이름의 고질병에서 기인합니다. 섬아닌 섬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반쪽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분단시대의 상처가 안으로 안으로 깊어져, 큰 그릇의 사고가 막혀있습니다. 상생이 아닌, 어떻게든 남을 딛고 올라서야 하는 살벌한 경쟁이 수십년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해쳐왔습니다.
▲ 평안도 덕흥리 고분에서 출토된 고구려 시대의 견우 직녀도, 우리 아이들 손잡고 북에 직접 가서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자료 사진: 정연진] |
새해에는 ‘분단이라는 마음의 병’부터 치유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소통 훈련을 더 쌓았으면 하고, 대통령께서 모범을 보이시길 부탁드립니다.
남북이 국제무대에서 공동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슈부터 협력해 나간다면 남북이 앞으로 함께 살아갈 ‘운명공동체’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운명공동체 라는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위기의 지구촌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비전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AOK (Action for One Korea)는 보통 사람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통일시대를 앞당기겠다는 염원으로 시작한 글로벌 풀뿌리 시민운동입니다. 한국과 지구촌 곳곳의 동포들을 연결하여 지구촌이 공감하는 통일비전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며칠간 수렴한 국내외 AOK 회원들의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앞으로 국정에 참고하시면 고맙겠습니다.
o “그동안 남북 화해와 협력, 통일을 언급할 때마다 ‘퍼주기’와 ‘종북’ 프레임이라는 벽에 부딪혀 통일운동권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통일문제에 관해 현 정권이 진정성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 ‘벽’을 뛰어 넘어 현실적인 측면에서 통일을 논의할 수 있게됐다는 건 분명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합니다.”
o “통일과정에 관한 활발한 통일 논의와 시민 참여, 민간교류 활성화가 없는 국제적 정치권력의 통일론 독점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통일론이 시민사회에서 쇠퇴했고 민간교류도 금지되고, NLL 평화공동구역 남북합의를 ‘종북’이라 매도하는 시대에 갑자기 ‘통일은 대박’이라는 대통령의 말은 뜬금없이 들립니다.“
“한국은 독일처럼 국내외 조건이 흡수통일 할 조건도 능력도 갖추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소련의 멸망으로 위성국가들 붕괴가 도미노현상을 이룰 때입니다.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대변할 것입니다. 통일은 준비해야지만 올 수 있습니다. 통일에 대해 시민사회와 열린 논의부터 시작하고, 막혔던 교류부터 터야 합니다. 남북정상회담 약속부터 지켜나가야 합니다. 통일의 과정에 충실히 임해 주기를 당부합니다.”
o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 중국 내전에서 마오쩌둥의 승리에 대해 민주당보다 더 분개했었고 1950년대 내내 핵무장으로 중국과 대립각을 세웠으나 1971년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마침내 1978년 미중수교의 물꼬를 튼 것처럼, 외교와 남북문제를 살아있는 생물처럼 다루면서 한반도 주민들에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주십시오.”
o “중국의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으로 인해 패가망신한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등소평이 모택동을 ‘공칠과삼’(공은 7이고 과는 3)이라 평가했고 중국 민중은 ‘공칠과삼’을 택했습니다. 이는 마오쩌둥의 한평생을 뒤적거려 정확한 분석과 평가 속에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민중이 선택을 한 것입니다. 공칠과삼이란 평가나 흑묘백묘(쥐만 잡으면 흰색 고양이나 검은색 고양이나 상관없다)의 같은 흐름이라고 봅니다. 만일 중국 민중이 당시에 공삼과칠을 선택하지 않았고,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오늘 날의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긍정적 에너지로 봅시다. 수 많은 박근혜 대통령 팬 국민들이 ‘통일이 대박이다’란 한마디로 통일에 대한 관점이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o “진정 국가와 민족을 생각한다면, 그 어떤 정략을 떠나 남북경협을 활성화하십시오!”
o “5.24조치 당장 해제하고 민간교류를 터서 남북이 화해하고 소통하는데 물꼬를 트십시오.”
o “이번 설날에 남북이산가족 노인분들이 평생 그리던 가족들과 죽기 전 한 번 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70년 기다려 왔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o “과거 독재 하에서 통일을 위해 감옥도 가고 목숨 바쳐 헌신한 수 많은 민주인사들, 그리고 통일의 상대인 북의 2천4백만 동포들에게 박 대통령의 ‘대박’ 발언이 긍정적으로 느껴졌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o “대박’이라는 단어가 혹여 북쪽의 부동산을 멋대로 차지하고, 저임금 노동으로 북한 동포를 착취하여 월가의 거대자본과 그 하수인 격인 국내의 몇몇 재벌의 배만 불리는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런지…..심히 우려됩니다.”
o “ 남북관계는 고도로 은밀한 정보전쟁입니다. 통일현안에 주동적으로 전략대처해야 합니다. 통일은 대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남북 모두의 이익에 부합되어야 합니다. 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종속을 강요해서는 절대 화합할 수 없습니다. 북측의 형제들도 자기들 내심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o “남북이 공동대처할 수 있는 일제 위안부 문제, 중국과의 동북공정문제 등과 같이 국민적 합의를 손쉽게 이룰 수 있는 문제들부터 협력해 나가면 점점 공감대가 넓어지리라 봅니다. 북이 핵을 포기해야지만 대화를 하겠다고 하시는데, 북이 사생결단을 하고 매달려온 핵문제를 먼저 선결조건으로 하는 것은 ‘대화할 용의가 없다’의 다른 표현 아닙니까.”
o “통일은 갑자기 오지 않습니다. 오래동안 갈고 닦듯 공 들여 성심을 다해 준비해야 합니다. 북은 수뇌부와 인민들이 있는데, 우리는 무조건 하나로 생각하고 북과 기싸움을 하려고 합니다. 북을 대할 때는 정직하게 대해야 합니다. 북쪽 인민은 남에서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고 있는지, 아마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o “경제 문제만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위험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북통일에 있어서는 남과 북이 왜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신, 문화, 영’적인 이해와 공감…… 이러한 것들이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의 주민이 가슴 깊은 곳에서 절실하게 뜨겁게 공유하고 지키고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 그러한 정신과 영혼의 불꽃을 피워내고 지켜나갈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어떤 난관이라도 물리치고 멋진 평화통일을 이룩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o “통일을 국가 어젠다로 천명한 박 대통령의 선언을 크게 환영합니다. 남과 북 양쪽 정부를 공감시키는 아젠다를 민간이 주도해서 제안했으면 합니다. 1970년대 핑퐁외교처럼 말입니다.”
o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운 한국인의 덕목은 ‘은근과 끈기’ 였습니다. 통일문제야 말로, ‘대박’이라는 성급한 환상을 주는 말보다는 은근과 끈기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 대통령 화두에 의해 우리 국민들도 긴 잠에서 깨어나길 바랍니다. 그동안 대화가 되지 않았던 진보와 보수가 이제 우리 겨레의 백년대계인 통일을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공동의 미래를 논의하는 통 큰 대화의 장을 열어나가는 성숙한 대한민국을 보게 되길 원합니다.
또한 사회가 갈등을 극복하고 소통과 화합의 길로 전진하는데, 해외동포들이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남북의 화합도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장구한 해안에 펼쳐진 ‘무한한 가능성’을 대통령과 우리 국민들께 새해 선물로 드립니다.
▲ 장구한 아름다움을 가진 태평양 해안.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다. [사진: 정연진] |
2014년 1월 8일, 로스앤젤레스에서
AOK (Action for One Korea) 대표 실행위원 정연진 드림